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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사


패권 앞에선 중도의 읊조림, "Small is Beautiful."



세계 불교도들의 화합을 다지며 동행을 결의하는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가 한국 여수에서 개최됐다. 제 1회 세계불교도우의회가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이후 한국 대회는 서울에서 1990년도에 이미 한 차례 개최된데 이어 22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의미 깊은 행사다.

현재 공식적인 불교기로 사용되는 깃발이 채택된 곳이 195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부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느 불교도대회보다 영향력이 있는 큰 행사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네팔 대회 당시 석가모니 붓다의 열반 해를 기원 원년으로 하는 불기를 2550년으로 결의 했으며 한국도 당시 채택된 불기를 따라 올해는 불기 2556년이다.

6월 10일, 27개국 세계불교도우의회 회원국에서 불교 관계자들의 입국을 시작으로 공식 일정이 시작되어 16일까지 세계불교도의 우의를 다지는 일주일을 보냈다. 더욱이 해양과 생태계를 주제로 한 여수 엑스포와 병행해 개최된 이번 불교도 대회는 21세기 불교와 불교도의 활로를 모색하는 범지구적인 행사로 거듭나기 위해 주력했다.

이번 다람살라 소식은, 6월 8일 삼동 린포체(73)의 한국 방문 비자가 확정되기의 준비 과정과 이후 16일 한국 출국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일어났던 언론에 비춰지지 않은 일화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국불교도 대회 기간 동안 가장 민감한 부분으로 언론의 이목을 집중한 일을 꼽는다면 단연 삼동 린포체의 한국 방문과 티베트불교 관계자와 중불불교 협회간의 충돌이었을 것이다. 14대 달라이라마(텐진갸초, 77)를 대신해 한국에 방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삼동 린포체와 함께한 여수에서의 제 26차 세계불교도대회. 한국불교의 이면을 넘어 불교도의 과제를 전망해 볼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음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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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 린포체, 본명은 롭상뗀진

삼동 린포체는 14대 달라이라마의 최측근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 티베트망명정부 수립부터 정치적 보좌 역할을 해온 그는 본명 롭상뗀진(Lobsang Tenzin) 보다 5대 삼동 린포체의 호칭으로 대중에게 더욱 유명하다. 5세 때 티베트 동부 죠울 지방의 가덴데첸링사원(Gaden Dechenling Monastery)으로부터 4대 삼동 린포체의 환생자로 인정받아, 7세에는 라싸의 데뿡사원(Drepung Monastery)사원에서 정식으로 출가해 수행자로서의 불교 교육을 받았고 중관(Madhyamika) 과정까지 수료했다. 소정의 불교학 과정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은 당시 티베트의 위급한 상황을 대변한다.

티베트에서 학자와 승려의 길을 걸으며 정진해 오던 삼동 린포체는, 1959년에 중국의 티베트 강제 침략에 대항하는 민중봉기 당시 달라이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했다. 이후 티베트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중점 과제를 두고 인도 동북쪽 쉼라·다르질링에서 티베트 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65~70년에는 다람살라 인근 델라오지에서 티베트 학교 교장 직을 맡았다. 이어서 1971~88년에는 바라나시 티베트대학(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의 교장으로 근무 했으며, 1988~2001년까지 이사장직을 맡았다. 2001년 7월 티베트망명정부 초대 총리로 민주주의 투표 방식에 의해 선출된 이후 2006년도에 국민의 투표로서 재선임 되면서 2011년 4월까지 10년간 망명정부 내각의 의장으로서 총리 역할을 수반해왔다.

총리직을 수행하는 10년간 인도 52개 티베트 난민캠프의 자활을 위해 유기농작과 자체 에너지 생산 시스템 구축에 주력해왔다. 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라싸, 캄, 암도 지방의 갈등을 화합하고, 티베트 본토에서 부모와 떨어져 인도의 난민 신분으로 홀로 정착하고 하는 청소년에게 바른 티베트 문화와 인성을 교육하고자 하는 취지로 삼보따티베트학교(sambhota school)를 설립 운영했다. 삼동 린포체는 2012년 현재 인도 다람살라 소재 달라이라마사무소에서 14대 달라이라마의 수석 비서로서 외교 특사의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총리에서 퇴임한 후 변화된 일상이 있느냐는 물음에 “과도한 업무에서 약간의 홀가분함 이외에 크게 변화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삼동 린포체가 그의 본명으로 굳어진 것은 달라이라마와 인도에 망명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인도어 힌디와 영어 구사에 능통하지 않던 상황에서 인도 마수리에 도착해 난민 등록을 해야 했다. 존칭으로 불리던 삼동 린포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현지 인도정부 관리자는 영문 알파벳 문자 에스(S)에 점을 찍어 린포체라고 등록 시키고 말았다. 성씨가 린포체인 가문의 삼동이라는 이름으로 해석된 것이다. 이후로 그의 본명 롭상뗀진은 히말라야 넘어 티베트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삼동 린포체라는 제 2의 인도 인생이 펼쳐지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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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품은 채식주의자

“스님. 토마토는 과일인가요 채소인가요?”

디저트 접시 위에 한국의 계절 과일을 담아 드리며 물었다. 삼동린포체는, “과일입니다.”라고 답했다. 처음 삼동 린포체에게 알이 굵은 포도와 수박 그리고 파인애플을 담아 식사 테이블 위에 올리며, “이 접시 위에 아주 재미난 것이 있습니다.”라고 운을 띄었다. 그러나 삼동 린포체는, “저에게는 재미난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이라며 주저 없이 딱 잘라 답하면서 실제로는 화기애애한 저녁 시간의 화재거리가 되었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토마토는 절대적으로 채소에 해당한다. 과일 가게에서는 토마토를 판매하지도 않는다. 당시 자리에 함께한 라마롭상(인도국제불교연맹 아쇼카미션 회장, 81)께서도 토마토는 절대 채소라고 단언했다. 이유는 토마토는 요리를 해 먹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삼동 린포체는 망고 역시도 카레의 재료로서 요리를 해먹는데 왜 채소가 아닌 과일이냐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열매는 과일이라고 해석했다. 진정 학자다운 면모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더욱이 삼동 린포체는 채식주의자다.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지내기에 지장이 많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삼동 린포체께서 여수에서 지내시는 동안 식사에 있어서도 특별한 관심이 요구됐다. 달라이라마께서는 몇 해 전 비장 제거 수술 이후에 의사의 권유로 육식을 하신다고 세간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동 린포체는 순수 채식을 고집하고 계셨고 이 사실을 아는 이 역시 드물다. 더욱이 오후 불식이 습관이신 상황에서 저녁 공양을 대접하려니 서로가 애민해 질 수밖에 없었다. 시주자와 시주물 그리고 시주를 받는 대상이 모두 청정하기에 이심전심으로 순조롭게 진행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숙소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취침 인사를 드릴 때는 매일 따뜻한 우유를 준비했다. 이유인 즉, 아유르베다 약과 함께 취침 전에 따뜻한 우유를 드신다는 것이다. 스님은 인도 다람살라 사라대학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결핵을 앓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다. 당시 잦은 기침으로 방사선 검사를 해 보니 폐에 희뿌옇게 동전 크기의 염증 멍울이 발견된 것이다. 결핵을 치료하는 데만 정확히 9개월 하고도 9일이 걸렸고 일체 양약은 복용하지 않았다. 단지 오늘까지도 매일 아침마다 알레르기처럼 콧물이 나는 것이 낮지 않는다며 무엇이든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도 예외가 있다는 농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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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줄다리기에 편들지 말라

인도에서 한국 방문을 위한 비자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한국 대사관은 모든 비자 접수를 델리의 제 3 기관에 위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비자 신청을 위한 필수 서류에는 초청장을 비롯해 재직증명서와 통장 입출금 사본도 요구된다.

세계불교도대회를 앞두고 한국 사무국의 집행위원회(위원장 진옥스님)는 달라이라마 초청을 추진했다. 세계불교도의 우의를 다지는 이번 행사를 통해 달라이라마 한국 방문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이는 한국 불교도의 바람이기도 했다.

인도 다람살라 달라이라마 사무소 측에서는 비자만 발급된다면 모든 유럽 일정을 취소하고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을 추진하겠다는 적극적인 답변을 주었다. 이미 6~7월간 달라이라마의 영국과 이탈리아 등 해외방문 일정이 확정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렇다한 답변이 없었고 서로가 애타는 시간을 안타깝게 흘러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진행 과정동안 인도 델리에 지부를 둔 인도국제불교연맹 아쇼카미션은 인도불교도 연합 단체로서 달라이라마의 한국 방문을 위해 큰 관심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불교도대회 사무국 측에 어서 초청 서신을 완성해 보내 달라며 닦달할 정도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라이라마의 초청은 점차 불투명해져 가는 듯 했다. 결국 10년 이상 한국인 불자를 위해 달라이라마의 다람살라 법회를 주관해온 진옥 스님(석천사 주지, 세계불교도우의회 집행위원장)의 개인 초청 명목으로 달라이라마의 수석 비서인 삼동 린포체의 비자가 성사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삼동 린포체는 초치일관 본인은 학자일 뿐이라며 그 이상은 없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왜 이번 행사에 초청 받아 왔는지 모르겠군요.”

세계불교도대회 행사 기간 내내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삼동 린포체는 관계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결국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본인의 답답한 심정을 밝혔다. 삼동 린포체는 지난 세계불교도우의회 한국대회에 이미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러한 이력으로 이번 한국 대회에도 참석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그 의미가 이번 대회에서는 무색해 보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역으로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한국 불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고 재해석하기도 했다. 중국이 말하는 내정간섭의 현장이 이번 대회에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실질적으로 불씨가 굵어진 것은 12일 저녁 6시 개회식 본행사를 앞두고 중국 측과 눈치작전을 벌이던 때다. 당시 삼동 린포체와 캄튤 린포체를 모시고 흥국체육관으로 향하던 도로 위에서 호텔에서 버티고 본 행사 참석을 미루고 있던 중국측 불교 대표단과 중국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팔롭 사무총장을 내 눈으로 보았다. 결국 삼동 린포체 일행은 개막식이 열리던 체육관 정문에서 차를 돌려야 했다.

당시 진옥스님과 안타까운 심정을 대면했던 삼동 린포체의 눈빛을 기억한다. 현장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언론을 위해 잠시 승용차 창문을 열어 미소로 답하던 삼동 린포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한탄스러운 현실에 대한 유감뿐이었다. 당시 개회식장에는 중앙티베트행정부 종교문화성 대표 빼마 친조르와 초나곤체 린포체를 비롯해 히말라야 소수민족 불교 관계자가 공식적인 대회 참가자로 내빈해 있었으나 중국불교 관계자는 티베트 망명정부와 달라이라마 관계자들과 동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개회식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세계불교도대회기간 동안 삼동 린포체는 여수엑스포 참관과 개별적으로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기에도 모자란 바쁜 시간을 보냈다. 13일, 경주 불국사를 방문한 삼동 린포체는 동국대로 이동해 ‘티베트 불교문화, 재가불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다. 같은 날 이른 아침 6시 경 중국불교협회 소속 관계자들 모두는 대회장을 일방적으로 떠나 한국을 출국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삼동 린포체는 중국의 반응에 시종일관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동국대 강연회 이후에는 송광사 방장스님을 친견한데 이어 부산 홍법사, 범어사를 거쳐 16일에는 광성사에서 법회를 열고 경기도 일산 여래사에서 정우 스님과 회동을 갖은 후 저녁 비행기로 출국해 인도 델리로 귀국했다. 14일, 조계종에서는 중국 불교단의 일방적인 출국에 관련해 입장 성명을 냈다. 그리고 15일에는 폐막식에서 삼동 린포체와 조계종 총무원장(자승스님)의 면담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이내 번복해 취소했다.

삼동 린포체의 이번 한국 방문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국에서의 일주일 간 그가 느낀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연신 한국과 한국인의 아름다운 정서를 극찬해 마지않던 삼동 린포체에게 여수 일정의 마지막 날, “부디 한국에서의 기억이 완만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삼동 린포체는 따뜻한 미소로서 화답해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Small is Beautiful."

한국 여수= omflower@dalaila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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