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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사

중앙일보

입력 2011.09.23 00:06 / 수정 2011.09.23 00:13

플라톤 공부하며 느낀 갈증, 달라이 라마 만나며 풀었다

배우 우마 서먼의 아버지이자 미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학자 로버트 서먼

14일 미국 뉴욕의 티베트 하우스에서 만난 로버트 서먼 교수는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개종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종교전쟁이 생긴다. 불교도는 더 나은 불교도가 되고, 기독교도는 더 나은 기독교도가 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불교학자. 달라이 라마의 절친한 친구. 할리우드 영화배우 우마 서먼의 아버지.

 그가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70) 콜롬비아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다. 14일 미국 뉴욕의 티베트 하우스에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서먼 교수는 티베트 불화(佛畵)가 걸린 방에서 “반갑다”며 악수를 청했다. 탁자 위에는 얼마 전 국내 출간된 한국어판 『달라이 라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놓여 있었다.

 서먼 교수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명문가의 자제, 방랑자, 수행자, 출가 승려, 대학 교수 등 산전수전을 겪으며 50년째 수행해오고 있다. 1960년대 티베트 승려가 된 최초의 서양인이기도 하다. 1997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꼽히기도 했다. 동·서양을 넘나든 그에게 삶과 불교를 물었다.

 -명문 사립인 엑스터 고등학교를 다녔다. 졸업 직전에는 쿠바의 혁명 게릴라군에 지원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렇다. 당시 쿠바와 가까운 플로리다에서 카스트로 군대가 군인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혁명군이 되기 위해 멕시코 출신 친구와 그곳에 갔다. 당시 나는 17살이었다.“

 -무엇을 찾고 싶었나.

서먼 교수와 영화배우로 유명한 그의 딸 우마 서먼.
 “자유(Freedom)였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면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카스트로 혁명군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총도 가져갔다. 그때 나는 ‘뜨거운 혁명(Hot Revolution)’을 통해 자유를 찾고 있었다.”

 - 그래서 혁명군이 됐나.

 “아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다. 학교에선 퇴학당했다. 그래서 멕시코로 가서 1년간 언어를 배웠다.”

 이후 서먼은 하버드대 영문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다. 부유한 가문의 상속녀였다. 하지만 차고에서 펑크난 타이어를 고치다가 사고로 왼쪽 눈을 잃고 말았다. 그는 존재적 물음과 다시 직면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인도로 떠났다.

 -당시 풀지 못했던 의문은 뭔가.

 “실존적인 물음이다. 나는 칸트·헤겔 등을 공부했다. 그러나 풀리지 않았다. 플라톤으로부터 이어지는 서양철학은 훌륭하지만 관념적인 철학이다. 실제 우리의 마음과 연결된 가르침은 아니다. 마음과 연결돼야 마음의 문제를 푼다. 불교는 마음과 연결된 공부다.”

 서먼은 인도에서 만난 티베트 승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대신 불교를 배웠다. 그러다 달라이 라마와 인연이 닿았다.

 -달라이 라마와 어떤 관계였나.

 “1964년이었다. 당시 나는 23살이었고, 달라이 라마는 29살이었다. 나는 그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는 굉장히 영리했다. 과학뿐 아니라 민주주의 헌법, 역사, 심리학, 과학 등에 대해 두루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물과 화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친구가 됐다. 나와 만나려고 달라이 라마가 다른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비서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 그때도 달라이 라마는 불교에 능통했나.

 “초반에는 불교에 대해 물어도 거의 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스승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나 4~5년 후에는 놀랄 만큼 진보했다. 특히 ‘공(空)’에 대한 이해는 탁월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스승보다 더 깊이가 있었다.”

 -달라이 라마에게서 배운 것, 딱 하나만 꼽으면.

 “너무 많은 걸 배웠다. 굳이 하나만 꼽자면 자비다. 다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친절함, 지혜와 자비를 함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당시 나는 공산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달라이 라마는 달랐다. 공산주의에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뜻밖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공산주의자는 모두 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나를 설득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내 생각의 균형을 잡아줬다.”

 -달라이 라마와 사적인 대화도 나누었나. 개인적인 고민이라든가.

 “가끔 털어놓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대해 걱정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수행에만 전념하자고 했다. 달라이 라마가 안고 있는 정치지도자로서 부담은 컸다. 수많은 티베트 피난민이 인도와 네팔에 있었다. 그들에게 음식과 직업 등을 해결해줘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때때로 달라이 라마는 굉장히 보통 사람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1년 후에 달라이 라마는 서먼에게 계(戒)를 주었다. 서먼은 승려가 됐다. 티베트 승려가 된 최초의 서양 사람이었다. 그러다 베트남전이 터졌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평화를 외치며 반전운동을 했다.

 서먼은 고민했다. 산 속에 앉아서 수행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미국에서 승려는 대단히 낯선 존재였다. 서먼은 대학을 택했다. 승가(僧家)와 가장 비슷한 공간이 대학이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인도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콜롬비아대 종교학과 교수가 됐다. 그리고 『내면의 혁명(Inner Revolution』이란 책을 썼다. 그는 이제 ‘뜨거운 혁명(Hot Revolution)’ 대신 ‘차가운 혁명(Cool Revolution)’을 주장한다. 내 밖을 향한 혁명이 아니라 내 안을 향한 혁명이다.

 -미국인에게 불교란 어떤 종교인가.

 “사람들은 주로 참선의 종교, 명상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앉아서 좌선만 해선 곤란하다. 불교 철학에 대한 배움도 중요하다. 둘을 병행해야 한다. 어디를 향해서 참선할 건가.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게 불교 철학에 대한 이해다.”

 -현대 사회에는 종교간 갈등이 있다. 해법이 있나.

 “서로가 상대를 개종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럼 종교 전쟁을 낳게 된다. 이라크 전쟁, 알카에다 등도 이런 부작용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이슬람 교도는 더 나은 이슬람 교도가 되고, 기독교인은 더 나은 기독교인이 되고, 불교인은 더 나은 불교인이 되는 거다. 이건 굉장히 깊은 가르침이다.”

 -영화 ‘펄프픽션’ ‘킬빌’의 우마 서먼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다. 그녀도 부디스트(불자)인가.

 “딸아이의 집에는 불상이 있다. 그녀는 참선도 한다. 사실 모든 엄마들이 참선을 하는 셈이다. 하하. 엄마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주위를 보라. 모든 어머니가 보살이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정당 창당’ 문제가 이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하다.

 “위험한 일이다. 미국의 침례교도 중에 미셸 바크만·릭 페리 같은 이들은 ‘기독교인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운다. 그런데 미국 헌법 제정 당시에 침례교도는 소수였다. 그들은 청교도들에게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 정교 분리를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 참여를 하려고 한다. 나는 그들을 ‘기독교 파시스트’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도 불교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기독교 정당이 생기면 이에 맞서 불교 정당이 생길지도 모른다.

 -종교 정당에 반대하는 이유는.

 “종교간 갈등만 심해지기 때문이다. 종교 정당은 결코 민주적일 수가 없다. 종교가 정치를 장악하면 전체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다른 종교를 박해하는 건 뻔한 결과다. 이스라엘을 보라. 종교적 다수가 소수를 박해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 정당이 생기는 건 위험한 일이다.” 

뉴욕=백성호 기자


◆로버트 서먼=1941년 미국 뉴욕 출생.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종교학과 명예교수이자 세계적인 불교학자다.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와 함께 뉴욕에 설립한 티베트 하우스의 원장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자신의 회고록이자 미국 역사학계의 불교적 세계관 논쟁을 정리한 『내면의 혁명』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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