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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사



“미워하지 말라. 증오하지 말라. 오직 용서하라. 그것이 평화다.”

2월 8일. 티베트중앙행정부가 설립된 인도 다람살라 쫄라캉에는 일순간 침묵의 묵념이 흘렀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촛불 의식이 인도 델리에서는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더불어 캐나다, 코스타리카, 폴란드, 헝가리,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도 티베트의 자유를 호소하는 크고 작은 집회가 열렸다.

이는 지난 6일 티베트망명정부 총리 롭상상게(Lobsang Sangay)가 유엔(UN)측에 티베트의 현안을 직접 조사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국제 사회의 관심과 후원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띄운 것이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 이후 이틀 만에 진행된 범지구적 행동이었다.

‘티베트에 자유를(FREE TIBET).’

이날 세계 곳곳에서는 하나된 목소리로 티베트를 향한 서원을 담은 저마다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초는 자신의 몸을 태워 곧은 심지의 뿌리가 다 타들어 가도록 세상을 밝힌다. 무명에 휩싸인 세상에 섬광을 남기며 ‘부디 깨달으소서’라며 간절히 염원한다. 이렇듯 스스로를 태우며 세상에 진실의 등불을 밝히려는 소신공양이 티베트(중국 서장자치구)에서 연일 일어나고 있다. 잠정 집계된 바에 의하면 2월 13일까지만 22명이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아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중국정부는 사고 사망자의 진위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단체의 지속적인 권고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언론을 통해 국제 사회에 역으로 제창하고 있다. 급기야 3월 10일 티베트 민중 봉기의 날을 염두하고 서장자치구 경계 태세를 강화하면서 외국인의 출입을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다.

구랍 3월 10일 52주년 민중봉기 기념식에서 14대 달라이라마(텐진갸초, 76)는 티베트의 정치적 지도자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이후 8월 민주주의 선거 방식에 의해 롭상상게 박사가 3대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티베트 본토 끼르티사원의 승려가 분신하면서 잠시 주춤했던 ‘티베트의 종교의 자유와 달라이라마의 귀환’을 촉구하는 소신공양이 다시 줄을 잇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헤아려 보면 2008년 3월 미국의회에서 달라이라마에게 황금메달을 수여한 것을 기념해 티베트 라싸에서의 행사가 열렸을 당시 중국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것이 현 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다. 급기야 다음 달 4월에는 중국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성화 봉송을 반대하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 베이징올림픽 개최의 부당함을 항의하는 대형 집회가 열렸다.

당시 티베트의 문제는 점차 세계의 문제로 가시화 됐고 중국으로 향하던 성화 행렬이 한국을 통과할 때는 중국 유학생들과 한국 학생들 간의 유혈 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언론은 티베트의 현실을 심도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소신공양이 종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다시 번지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인도 보드가야에서 거행된 칼라차크라 대법회 이후 중국의 새해 명절인 춘절 23일이다. 이날 티베트 동부 지역에서만 1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대규모 평화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무력으로 통제하면서 사태는 종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중국정부는 무장경찰을 투입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비디오 촬영을 통해 당시 현장에 가담한 티베트인들을 모두 색출해 체포했다. 이어서 달라이라마를 두고, 승복을 입고서 서방 세계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기꾼, 음모론자, 분리주의 선동자라며 대역 죄인으로 몰아 세웠다. 심지어는 체포된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라마의 사진에 침을 뱉으라고 강요까지 했다.

어떠한 이유로 중국은 달라이라마의 존재에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일까? 전 인류의 평화와 인권 그리고 윤리의 상징체가 된 76세의 소박한 노장은 “나의 이름이 단지 달라이라마일 뿐”이라며 “티베트인들이여.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붓다의 말씀과 바른 믿음에서 삶의 해답을 구하라.”고 항시 타이른다. 심지어 그는 “여생 안에 티베트중앙행정부가 부디 민주주의 꽃을 활짝 피운 모습을 보고 싶다.”며 수차례 바람을 표하기도 했다.

칼라차크라 대법회 이후 1월 25일, 달라이라마는 왼쪽 눈의 백내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회복 후 달라이라마는 “향후 20년은 건강하게 살 테니 너무 염려치 말라.”며 측근을 통해 대중에게 안부를 전했다.

이와 관련해 2월 3일자 로이터통신은 미국 콜럼비아 대학의 티베트 전문가 로비바넷(Robbie Barnett) 교수와 나눈 흥미로운 인터뷰 기사를 소개했다. 현 달라이라마가 아무런 향후 대안 없이 원적에 들 경우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재정립 하는 것에만 새로운 반세기를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였다.

세계지도에는 더 이상 티베트가 없다. 그러나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가 작고 초라하게만 느껴질지 모를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아 ‘티베트가 있다’고 ‘티베트를 잊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휩싸인 강대국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으로만 대처하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참으로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2월 8일 쫄라캉에서 거행된 추모식에서 롭상상게 총리는 “부디 국제 사회가 연대해 티베트의 기본 권리에 지지하는 목소리에 뜻을 모아 달라.”며 눈물을 보였다. 티베트의 잃어버린 눈물 53년은 과연 언제쯤에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중국정부에서 주장하듯 티베트의 해방이 사회주의 낙원의 실현이라면, 그들만의 천국에서는 총살도 분신도 모두 정당하다는 의미인가.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비보 속에서 달라이라마의 오랜 친구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가 2월 10일에 다람살라를 찾았다. 구랍 10월 투투 대주교는 본인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달라이라마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초청했으나 중국과의 외교협력 문제로 달라이라마는 비자를 승인받지 못했고 결국 남아공에 방문하지 못했었다. 남아공 내부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한 공로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투투 대주교는 항시 티베트의 문제와 현황에 관심을 가지고 독려해 온 달라이라마의 절친한 벗이다.

이날 쫄라캉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달라이라마는 “희망의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기쁘다.”고 말하면서 투투 대주교의 장수를 기원하는 발원을 담아 남걀사원의 탑을 형상화 한 조각상을 선물했다. 대주교는 “비로소 나의 80세 생일잔치가 완벽한 축하로서 완성됐다.”면서 “달라이라마의 자비가 온 세계에 두루 함께 함을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다운 환영식에 감사하며, 달라이라마의 발걸음에 뜻을 모아 나의 남은 생애도 함께 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21세기의 살아있는 붓다, 평화의 상징인 달라이라마. 역대 달라이라마 가운데 가장 격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성인이다. 지난 32회 칼라차크라 대법회에는 총 66개국에서 1만여 명의 외국인이 참석했다. 더불어 인도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온 7만 4천여 명의 망명 티베트인과 9천명의 티베트인들이 본토에서 참석한 것으로 공식 집개 됐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라마로부터의 관정은 일생의 서원이자 축복이다. 그렇기에 티베트 본토에서 참석한 이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갔을 때 받아야 하는 중국 공안의 고문 역시도 당연지사 감수해야 할 과정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반면 일부 연세 지긋한 티베트 어르신들은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에 망명하기도 한다. 여생을 달라이라마가 계신 곳에서 함께 지내고 싶은 소박한 바람 때문이란다. 그들이 성지 순례를 명목으로 인도를 방문하기에 앞서 사상교육을 통해 달라이라마 법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을 중국정부에 다짐함에도 불구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개차법인 것이다.

반면 이 때 유입된 티베트인들 가운데는 중국정부가 심어 놓은 간첩도 다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티베트중앙행정부는 달라이라마의 신변 안전 보호 이외에 치안 유지에 있어서는 사실상 민감한 감시와 통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또한 망명정부가 지향하는 민주주의 삶의 구현을 위한 최선책중 하나다.

칼라차크라 법회중에 달라이라마는 관정에 앞서 사부대중에게 “동기를 바로 세우라.”고 발보리심의 심지를 박았다. 보살계와 금강승 밀교의 계율을 지킬 수 있는가 스스로를 점검한 후 확신을 지니고 법회에 임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지구와 인류는 과학과 환경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어 왔다.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대됐다. 마음의 철학 분야에서 불교는 인간과 환경의 매개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중국의 편협한 생각을 지닌 지도자들은 티베트 본토에서 전통적으로 지녀온 신앙인 불교를 탄압하고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통제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이번 칼라차크라에 참석한 9천여 명의 티베트 본토 방문객들이 이번 법회의 상수 제자라고 밝혔다. 중국은 선조 때부터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지만 국가 정책상 올바른 신앙생활을 가질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바른 불법의 도리를 알기란 전무했다. 그런 의미에서 달라이라마는 그들에게 올곧은 티베트불교를 전수할 값진 기회라고 여긴 것이다.

불교를 믿는 모든 이들은 바르게 알아야 한다. 불법으로서 진리를 보고 지혜를 일으킴으로서 전도된 지견을 바로 잡아야 한다. 붓다는 법을 보이는 분이며 승보는 보배로운 법을 마음에서 일으켜 경지로 전진하는 이들이다. 성취하고자 하는 이들이게 달라이라마는 말한다. 진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바른 동기를 세워 지혜를 일으켜야 할 것이라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연기의 진여실상을 바로 알아 깨달음의 진의를 굳건히 세운다면 구하고자 하는 바의 뜻을 성취하리라.

omflower@dalaila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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